여는 글
네네. 압니다. 우리네 아버지들 다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평일엔 회사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 일하고 애들 방학이라 심심하다고 아우성이고 비싼 숙박비와 꽉 막히는 도로를 뚫고 우리네 아버지들은 주말에 가족 여행을 가셔야 하죠.
장마철이다보니 외부 활동이 제한적이라 결국 돌고 돌아 거대한 실내 시설이 있는 곳에 여러분들은 도달하게 되실겁니다. 아마 상당히 많은 분들이 비발디파크,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소노 비발디파크'에 가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당연히 우리네 아버지들이 즐길 시설은 별로 없습니다.
'엔트 월드'라고 불리는 아이들을 위한 짐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애들과 함께 놀아주려면 엄청난 육체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모님들 사이에선 '개미 지옥'이라고도 불립니다.
물론 가족들과 물놀이를 즐길 수도 있지만 정말이지 아버지는 배제된 느낌의 시설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제가 좀 심심할 수 있는 아버지를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1. 비발디파크에 전기카드장이 있다고?
네. 있습니다. 저도 아예 몰랐는데 현장에서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네요. 지난해 9월 지인찬스로 처음 방문하게 되었는데 쿠폰북을 나눠 주더군요. 도착 후 별다른 일정을 정하고 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고민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눈이 번쩍 뜨이는 단어가 보입니다. '실내 전기 카트 K1SPEED'. 카트가 뭔지는 알고 있었지만 잘 몰랐던 탓에 '그거 뭐 장난감 같은거' 이렇게 생각만 했지 막상 타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9월은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시기었기 때문에 평소 짠돌이인 저는 저렴하지 않는 체험비를 보고서도 불쑥 도전하기로 한 것이죠.
2. K1SPEED 전기카트 비용
기본 요금은 33,000원입니다. 저렴하지 않죠. 1섹션에 12바퀴를 도는게 있고 1섹션에 24바퀴를 도는게 있고 1랩당 가격은 당연히 많이 도는 것이 쌉니다. 하지만 직원분들도 권하지 않고 굳이 이야기 해주지도 않으며 저도 24바퀴는 그렇게 추천드리지는 않습니다. 더더욱 처음이라면 말이죠.
기본 요금이 33,000원이지만 실제 가격을 알려드리면 1명당 23,000원입니다. 이 정도면 술 한 잔 하는 것보다 저렴하니 부담이 많이 줄어듭니다.
홈페이지에 고시된 할인 정책을 보면 이런 저런 말들이 많지만 그냥 현장에서 k1speed 회원 가입을 하면 1만원 할인을 해주기 때문에 굳이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여행을 가시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저렴한 가격에 즐기실 수가 있습니다.
3. 죽었던 경쟁심을 불러 일으키는 기록지
2022년 9월에 1번 그리고 2023년 6월 방문했을 때는 2번을 탔습니다. 원래 올 해 비발디파크에 간 이유 중 하나가 '카트 타러 가고 싶다'는 것이었기에 저는 제 시간이 더 있었다면 하루에 2번을 탔을 것 같네요.
아무튼 2022년 9월의 제 첫도전 기록을 보면 베스트랩이 22.246초였고 간신히 그 주에 탄 베스트12에 들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그냥 막무가내로 탔었기 때문에 뭐가 뭔지 모르고 그냥 열심히만 탔었던 것이죠.
참고로 K1RS라는 점수와 랭킹이 있는데 여러번 타면 계속 쌓이는거니 크게 중요치 않다고 보고 랩타임과 평균 랩타임을 보는게 더 중요한 수치라고 봅니다.
이 당시만 해도 기록이 나오고 나면 전광판 모니터에 이렇게 실시간으로 순서를 반영해줬습니다. 이때 함께 탄 3명이서 나란히 해당일 기준으로 2,3,4등을 마크해서 뭔가 되게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더군요.
4. 안전하나요?
네. 제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카트라는 이 차량 자체가 안전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일반 자동차와는 다르게 서스펜션의 쇼크 업소버 기능이 거의 없고 개방되어 있지만 전장(=앞뒤 길이) 대비 전폭(=좌우 길이)의 비율이 커 특별하게 올라타거나 하지 않으면 쉽게 전도되거나 전복되지 않습니다.
그저 과하게 코너를 돌게 되면 언더스티어가 자주나고 의도적으로 코너에서 스티어링 휠을 돌린 뒤 급가속을 해도 출력이 낮은 편이라 오버스티어도 나기 힘들 정도입니다.
전기 카트인지라 제한 속도도 꽤나 낮은 편이라 서킷을 보면 직선 구간이 거의 없고 대부분 코너와 헤어핀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 운전 실력이 좋은 분들에겐 유리하고 그저 직진만 하던 분들은 꽤나 어렵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간혹 주행을 하다보면 '펑펑' 거리는 소음이 나는데 연속된 코너에서 차량을 코너 벽면에 최대한 붙이려다보니 카트의 옆 가드가 벽을 치는 소리입니다. 살짝 살짝 스치는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너무 과하게 부딪히면 몸으로 충격이 올 수 있고 다틸 수도 있으니 의도적으로 박을 필요는 없을겁니다.
그리고 가드레일을 보면 뒤쪽에 스프링으로 충격을 흡수해줄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보통 도로에서는 차량이 가드레일을 뚫고 도로를 이탈하지 않는 목적으로만 만들어져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 목적을 기본으로 충격 흡수까지 할 수 있으니 여기어 작정하고 노력해도 크게 다치는게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느린 차량이지만 안전 장치는 예외가 없습니다. 하체와 상체 모두를 결박하는 6점식 안전벨트가 준비되어 있고 헬멧도 착용해야 하며 바라클라바라고 하는 헤어삭스도 착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와 같이 안경을 끼는 분들은 살짝 불편할 수 있긴 합니다. 그리고 시트 앞뒤 조절도 가능하니 멀게 느껴지는 분들은 반드시 직원에게 요청을 하시는게 안전하고 편합니다.
다행(?)인 건 스크린을 열고 탈 수 있다는 겁니다. 1랩에 겨우 20초니 12랩을 도는데 240초, 5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분명히 땀을 줄줄 흘리게 될 것이고 호흡마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느끼실겁니다.
5. 시시하지 않나요?
후후. 밖에서 보면 그렇게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존재하는 k1speed는 카트의 제한 속도를 선택할 수 있는데 국내 경기장에서는 꽤나 낮은 속도에 묶여 있어 브레이크를 전혀 밟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남이 타는걸 보면 '에구.. 저렇게 느리게 가서 뭐가 재미있겠어' 이렇게 비아냥 거리는 분들이 은근히 있는데 제가 장담하는데 100% 안타보신 분들이고 그런 분들 막상 타게하면 무서워할겁니다.
경기가 시작되면 1랩은 포메이션 랩으로 아주 천천히 서킷을 한 바퀴 돌게 됩니다. 차량의 출력 제한이 있어 어떻게 하더라도 느리게 갑니다. 저는 2번째 갔을 때는 이미 구간이 익숙하니 위빙 주행(=좌우로 왔다갔다 하면서 타이어 열을 올리는 S자 주행)을 하면서 가속 패달의 감각을 익히며 코너에서 어느 정도 붙었을 때 카트 옆 부분의 여백이 어느 정도인지 체크하곤 했었죠.
2랩째 출발 라인으로 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속도가 올라가는데 꽤나 강렬하게 출력이 느껴집니다. 전압이 낮은 배터리로 움직이는 카트라 만만하게 봤지만 그래도 바로 최대토크가 나오는 모터의 특성상 갑자기 확 빨라지는 느낌이 약간 떨리면서도 즐겁게 해줍니다.
6. 왜 힘들다는거지?
겨우 12랩을 타고나서 녹초가 되는 이유는 '스티어링 휠' 때문입니다. 당연히 논파워 스티어링 휠이 들어 있는데 나이가 있는 분들만 아실 예전의 '무파워' 차량보다 훨씬 더 무겁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스티어링 휠에서 기어를 물려 사람의 힘이 증폭되게 만드는게 일반 양산차라면 카트는 공간도 협소하고 타이어도 아주 작기 때문에 굉장히 큰 힘이 필요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스티어링 휠의 기어비가 양산차와 같이 한 바퀴 이상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겨우 90도 정도만 움직이기 때문에 차량이 정차해 있을 때 돌려보면 겨우 움직일 정도로 무겁게 느껴질겁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코너 때문에 쉴새 없이 팔을 움직여야 하기에 12바퀴만 타도 손과 팔이 정말 아픕니다. 덜덜 떨릴 지경이고 다음날 근육통이 느껴집니다. 이걸 모르고 처음부터 24바퀴 타면 강제로 하루 더 숙박을 해야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7. 서킷 교육 100만원, 실력이 늘었을까?
올 해 4월부터 현대자동차그룹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HMG DX)에 줄곧 참여하고 있고 현재 N어드밴스드까지 수료한 상태입니다. 교육비로만 100만원 넘게 지출을 했고 이제 아주 약간은 실력이 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궁금했던 겁니다. 첫 카트 주행 결과인 22.246에서 얼마나 더 단축을 할 수 있을지 말이죠. 지난번 함께 했던 맴버와 다시 주행을 했는데 저는 브레이크도 사용하면서 최대한 부드럽게 레코드 라인으로 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제 두 번째 도전 기록은 22.037이고 동승했던 분은 21.945초가 나오게 되면서 평생 놀릴감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100만원 투자한 저는 랩타임을 약 0.2초 줄인게 사실이지만 그냥 동네에서 그랜저 하이브리드 타고 다니는 아저씨가 21초대가 나와버리면서 난리가 난 것이죠.
기록지에 잘렸는데 심지어 해당 주의 베스트12 중 12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앞으로 운전 교육 받고 싶으면 서초동으로 오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8. '아냐 이건 꿈일거야' 다음날 다시 도전
늦은 밤 그리고 아침까지 놀림을 받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타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부드럽고 나발이고 그냥 대차게 시원하게 타보기로 결심한 것이죠.
당연히 처음에는 부드럽게 타면서 서서히 리듬을 찾기 시작했고 서서히 텐션을 올리다가 마지막엔 그냥 필수적일 때 말고는 가속패달을 계속 밟고 있자고 마음을 먹고 타니 세 번째 도전 결과는 베스트랩 21.243초로 개인 최고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주의 베스트12 중 5위에 등극하게 되었는데 20초대 진입하신 분들은 도대체 뭐하시는 분들인지 궁금하네요.
9. 미리 알고 타면 좋은 내용들
나름 서킷이다보니 규칙이 있습니다. 실제 레이스에 사용하는 플래그도 등장을 하는데 여러가지 색상과 의미를 가진 플래그들이 헷갈린다면 딱 하나면 기억을 하시면 됩니다.
차량이 출발할 때 운영자분들이 알아서 간격 조절을 해주시지만 차량들간 속도차이가 있으면 서서히 가까워지거나 멀어지게 됩니다.
많이 멀어지면서 가장 먼저 달린 차량이 12바퀴를 채우게 된다면 후속 차량들은 랩이 남이 있더라도 무조건 종료하게 됩니다. 그러니 실력이 비슷한 분들끼리 타는게 가장 좋습니다.
반대로 가까워지게 된다면 스타트 라인 주변의 직선을 지날 때 운영자가 파란색 깃발을 흔들면서 특정 차량을 지시하게 되는데 블루 플래그의 의미는 '후행에 빠른 차가 있으니 양보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때 느린 선행 차량은 우측 벽면으로 붙으면서 서행하면 되고 후행 빠른 차는 촤즉으로 추월하면 됩니다.
'파란색 플래그, 우측 양보, 좌측 추월'. 이 간단한 3가지가 헷갈리기 시작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블루 플래그를 무시하고 계속 달린다면 강제로 레이스가 종료될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랩이 늘어날수록 손이 아파올텐데 연속코너를 지나 스타트 라인으로 가는 길다란 직선구간에선 저는 손을 털면서 약간씩 쉬었더니 컨디션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더군요.
마지막으로 저의 세 번의 기록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베스트랩은 거의 끝자락인 10랩 또는 11랩에서 나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상컨데 이때 타이어 열이 최대치로 오르면서 최대 그립을 만들어내는 이유이거나 그냥 그때 차량이 최고의 출력이 나오도록 세팅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닫는 글
언젠가는 꼭 24바퀴를 한 번에 타봐야겠습니다. 만약 타이어 열과 접지 영향이 큰 것이 맞다면 몸은 힘들어도 12랩 인근에서 베스트랩이 나올지도 모르니 24랩에 도전을 해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방문하면 꼭 타보고 그 결과를 남겨드리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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